국제 콩쿠르 휩쓴 한국 음악가 … 60년간 148차례 우승
13 November 2017
지난달 23일 네덜란드 위트레흐에서 피아니스트 홍민수(25)가 리스트 국제 콩쿠르 2위에 입상했다. 닷새 후 지휘자 차웅(33)은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토스카니니 국제 콩쿠르 2위에 입상했다. 이처럼 한국인이 입상한 국제 콩쿠르는 올해만 9개다.
올해는 유네스코 산하의 국제 콩쿠르 세계 연맹(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s, WFIMC) 창립 60주년이다. 현재 ‘국제 콩쿠르’라 불릴 수 있는 대회들이 60년 됐다는 뜻이다. 한국 음악가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콩쿠르에서 입상했을까. 무서운 기세로 국제 대회를 휩쓸고 있는 한국인 입상 현황을 분석했다.
콩쿠르 대부분 점령한 한국인
현재 공인된 국제 콩쿠르는 125개다. WFIMC의 조건에 맞춰 가입 승인을 받은 대회들이다. 세계 각 지역에서 더 많은 콩쿠르가 열리지만 WFIMC는 기준에 맞는 콩쿠르를 국제 대회로 인증한다. 한 번 가입 됐더라도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연맹에서 나간다. 한국 음악가는 125개 콩쿠르 대부분에서 우승하거나 입상했다. 1~3위에 한국인이 한명도 없는 콩쿠르는 29개. 즉 96개 콩쿠르에서 한국인 입상자가 한 번이라도 나왔다는 뜻이다. 웬만한 독주자 콩쿠르는 한국인 입상자가 나왔다.
특히 주요 콩쿠르라 할 수 있는 대회는 모두 한국인의 우승 이력이 있다. WFIMC가 설립되던 해부터 연맹의 멤버였던 초창기 대회 11개에서 우승한 한국인은 총 28명이다.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의 피아니스트 조성진(23), 같은 해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의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2)와 부조니 국제 콩쿠르의 피아니스트 문지영(22) 등이다. 그밖에도 독일 ARD 콩쿠르,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도 한국 연주자들은 우승자 명단에 올랐다.
피아노·성악의 기세
한국은 피아노와 성악의 강국이다. 이 문장은 이제 숫자로 증명할 수 있다. 한국의 음악가들은 60년동안 전세계 국제 콩쿠르에서 148번 우승을 했다. 그 중 피아노·성악의 우승이 각각 42·40번. 절반 이상이 두 분야에서 나왔다. 그 다음으론 바이올린(36번) 우승자가 많았고 네번째로 우승자가 많은 첼로(7번)의 성적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특히 성악은 한 개의 콩쿠르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인 입상 이력이 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오페라 콩쿠르에만 한국인 입상 이력이 없는데, 지난해 시작된 신생 대회다. 스페인의 빌바오 성악 콩쿠르는 1996~2012년 한국인 우승자만 7명이 나왔을 정도로 한국 성악의 기세는 무섭다.
2010년대에 비약적 증가
첫 한국인 우승자는 첼리스트 정명화(73)다. 1971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46년동안 성적에는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 우승자는 2명이었고 80년대엔 3명이었다. 90년대 13명, 2000년대 50명의 우승자가 나왔다. 2010~2017년의 우승자는 80명으로 늘어났다. 77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설립, 9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등의 영향이 보인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영재 연주자 출신인 국제 콩쿠르 입상자만 200여명. 한국예술종합학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31), 김선욱(29) 등 콩쿠르 스타들을 다수 배출했다.
콩쿠르 퀸의 탄생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 태생의 연주자 중엔 다관왕도 많다. 2회 이상 우승한 음악가가 19명. 가장 많이 우승한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25)이다. 2014년 중국 바이올린 콩쿠르와 쇤필드 현악 콩쿠르에서 시작해 지난해 모차르트 바이올린 콩쿠르, 올해 통영에서 열린 윤이상 콩쿠르까지 모두 4회 우승을 했다. 커티스 음악원,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를 거쳐 현재 줄리아드 음악원에 재학 중인 송지원은 “2010년부터 콩쿠르를 나가기 시작했고 한번 출전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실력이 확 좋아지는 게 보였다”며 “네 번 우승했지만, 고배를 마신 콩쿠르가 몇 개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또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생각하면 콩쿠르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며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꼭 보여주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연주할 때 좋은 성적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피아니스트 이진상(36), 문지영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29), 클라라 주미 강(30), 바리톤 정승기(38)가 3회 우승을 기록했다. 문지영 또한 “한번도 콩쿠르라고 생각하고 연주한 적이 없고, 내 공연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지영은 국제 콩쿠르에 총 3번 참가해 3번 모두 우승했다.
지휘·작곡·실내악 분야는 미진
한국인 입상 현황에서는 분야의 편중이 눈에 띈다. 특히 한국인 입상자가 없는 29개 콩쿠르는 지휘·작곡·실내악·오르간·타악기 대회가 많다. 상대적으로 이 분야를 다루는 연주자가 적고 음악가 대부분이 피아노·성악·바이올린에 몰려있다는 뜻이다. 특히 우승 148회 중 118회가 피아노·성악·바이올린에서 나왔다.
하지만 현악4중주 콩쿠르의 우승은 파커 콰르텟과 노부스 콰르텟의 총 2회다. 또 현악4중주단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총 횟수 5회 중 3번이 노부스 콰르텟의 이력이다. 음악계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앙상블 팀이 한국에는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한 경험이 있는 피아니스트 신수정은 “예전에 비해 한국 음악 교육의 질이 절대적으로 향상됐다는 증거”라며 “똑같은 곡에 여러 명이 매진하는 등 부작용도 물론 있지만, 클래식 시장의 절대적 크기가 작은 한국 연주자들이 국제 무대에 진출할 유일한 기회가 콩쿠르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